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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당숙 동평군 이항 장희빈과 연결된 왕실 가계도 이야기

스마트블로그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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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이 가장 아꼈던 왕족은 누구일까?"

대부분 왕세자나 중전을 떠올리기 쉽지만 놀랍게도 숙종이 극진히 아낀 사람 중 하나는 바로 당숙(큰삼촌뻘)인 동평군이었습니다.

심지어 조선 역사상 동평군처럼 외교와 정치의 중책을 자주 맡은 왕실 종친은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총애받던 동평군이 숙종 치세 말기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어쩌다 사랑받던 왕족이 '역모'의 누명을 쓰고 사사(스스로 죽음)까지 당하게 되었는지 그의 짧고 굴곡진 삶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 한눈에 보기

  • 주제 : 숙종이 총애한 왕족, 동평군의 삶과 억울한 죽음
  • 포인트 : 정치, 외교의 핵심을 맡았던 동평군이 어떻게 역모에 휘말렸는가
  • 읽으면 알게 되는 것 : 조선 후기 왕실의 권력 다툼과 동평군의 억울한 최후

현종 사촌이지만 숙종과 친구 같은 당숙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동평군 역을 맡은 배우 이상엽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동평군 역을 맡은 배우 이상엽 (출처 : SBS)

1660년 봄, 조선 인조의 서자였던 숭선군의 아들로 동평군 이 항이 태어났습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음력 4월 8일, 양력으로는 5월 16일이었습니다.

동평군의 생부는 인조의 서자 숭선군, 생모는 평산 신 씨로 가문도 탄탄하고 혈통도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와 왕의 관계가 미묘했는데요. 아버지 숭선군은 인조의 서자였고, 동평군은 현종의 사촌 숙종의 당숙이라는 미묘한 위치였습니다.

나이 차이로 보면 거의 '친구'같은 당숙과 당조카였으니 숙종과 동평군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능력자 동평군

동평군은 어릴 때부터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680년 보사원종공신 1등에 오르고 1687년에는 혜민서 제조로 임명되어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의료 사업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동평군은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신하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왕족이 규정에 없는 일까지 맡는 것은 월권"이라는 반발이 일어났지만 숙종은 오히려 "당숙인 동평군에게 이 정도 대우는 당연하다"며 그를 두둔했습니다.

숙종의 신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89년부터 동지사 정사, 사은사 정사로 세 차례나 청나라에 다녀오며 뛰어난 외교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조선의 체면을 세운 왕실 종친으로서 동평군은 말 그대로 외교와 정치의 최전선에 있었다.

시기와 음모 조작된 상소

하지만 왕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동평군을 시기한 신하들은 어떻게든 그를 끌어내리려 했죠.

1690년 아버지 승선군이 사망하면서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승선 군의 유언대로 공주에 묘를 만들던 중, 어떤 이기양이라는 사람이 "동평군이 수백 가옥을 부수고 민폐를 끼쳤다"며 거짓 상소슬 올렸습니다.

결국 동평군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신문고를 두드렸고 숙종은 낭관들에게 몰래 수사명령을 내렸습니다.

결과는 명백했습니다. 모든 상소 내용이 거짓말이었죠.

연루자는 모두 체포되고 귀양을 갔지만 이 사건은 왕족 동평군의 명성에 깊은 흠집을 남겼습니다.

희빈 장 씨와의 인연

동평군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80년대 초, 출궁 했던 희빈 장 씨가 동평군의 어머니에게 의탁하면서 동평군과 장 씨 일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희빈 장 씨의 오빠 장희재와도 친분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장 씨와 교류하게 된 거죠.

그러다 희빈 장 씨가 재입궁하여 왕자를 낳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나중에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희빈 장 씨가 몰락하면서 동평군도 깊게 엮이게 됩니다.

장희재의 본처 김 씨가 "동평군이 희빈 장 씨에게 중전 복위를 지지하는 편지를 보냈다"라고 폭로한 것입니다.

결국 장희재와 동평군은 유배당하고 참수된 장희재와는 달리 왕족이라는 이유로 참수는 면했지만 1701년 11월 8일 사사명령을 받고 생을 마쳤습니다. 당시 나이 42세였습니다.

죽기 전 동평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원통함을 안고 죽지만 하늘과 해가 나의 무죄를 비춰줄 것이며, 후세에 군자가 있다면 이를 알 것이다."

TIP
조선시대의 사사(賜死)란?
임금이 신하나 왕족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참형(목 베임)보다 '체면'을 살려주는 형벌로 여겨졌지만 사실상 강제 처형이었습니다.

 

고종 시대, 명예 회복

동평군의 억울함은 무려 160여 년 동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864년 고종이 즉위하면서 동평군의 명예가 회복됩니다.

"무죄한 왕족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상소가 올라오자 고종은 그의 복권을 명령했습니다.

비록 살아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후세에 동평군은 '억울한 희생양'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동평군 가계도

관계 이름 생몰년도 주요 사실
본인 동평군 이항 1660 ~ 1701 숙종의 당숙, 억울한 사사
부친 숭선군 1639 ~ 1690 인조의 서자
모친 영풍군부인 평산 신씨 1639 ~ 1692 평산 신씨 가문 출신
배우자 금성군부인 박혜 1659 ~ 1727 박세장의 딸
장남 반양도정 이소 1686 ~ 1739 학성군, 학천군, 학원군의 조부
차남 반릉군 이현 1693 ~ 1713 요절
장녀 이름 미상   윤경구의 처

대중매체 속 동평군

장희빈을 다룬 드라마들에서 동평군은 종종 등장했는데요. 다만 나이 설정이 부정확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1980~2000년대 드라마에서는 주로 숙종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견 배우들이 동평군을 연기했지만 실제로는 숙종과 1살 차이밖에 안 났습니다.

다만 2013년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유아인(숙종)과 이상엽(동평군) 같은 또래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비교적 정확한 나이대를 재현했습니다.

 

✍️ 정리
동평군은 조선 후기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왕족이지만, 권력 다툼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비운의 인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동평군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다면, 어떻게 억울함을 풀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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