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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공신, 조선 개국공신명단과 개국공신의 업적 분석

스마트블로그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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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자신과 함께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는 데 기여한 인물들이게 공신의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이성계는 이를 통해 조선 개국의 공로를 인정하고 조선 개국공신들의 충성을 보장하려 했습니다.

개국 후 한 달이 지난 1392년 8월, 태조 이성계는 ‘공신도감(功臣都監)’을 설치하고 공신을 선정했습니다. 초기에 선정한 개국공신은 52명이었으며 이후 정치적 변동에 따라 일부 인물이 추가로 공신 반열에 오르거나, 반대로 배제되기로 했습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태조의 아들인 이방원(태종), 이방의, 이방간이 1등 개국공신으로 추가되면서 최종적으로 조선 개국공신은 55명으로 확정됐습니다.

조선 개국공신의 등급과 주요 인물

조선 개국공신은 기여도에 따라 1등, 2등, 3등으로 나누어졌습니다.

1등 공신 : 좌명개국공신(佐命開國功臣)

가장 높은 등급의 개국공신으로 조선 건국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입니다.

총 20명이 책록 되었고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 정도전(鄭道傳): 조선 개국의 설계자로서 새 왕조의 이념과 법제를 마련한 핵심 인물. 하지만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에게 숙청되었다.
  • 조준(趙浚): 조선의 경제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토지제도 개혁을 주도했다.
  • 배극렴(裵克廉): 이성계와 함께 여러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으로, 개국 후에도 조선의 군사적 안정을 담당했다.
  • 이방원(李芳遠, 후의 태종): 개국 초반에는 왕위 계승과 거리를 두었으나, 이후 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며 조선의 실질적 후계자로 부상하였다.
  • 남은(南誾): 이성계를 보좌하며 개국에 큰 공헌을 세웠으나, 정도전과 함께 이방원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 외에도 김사형, 이자란, 정희계, 조박 등의 인물들이 1등 공신에 포함되었습니다.

2등 공신: 협찬개국공신(協贊開國功臣)

조선 개국 과정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로 총 13명이 선정되었습니다.

 

  • 정지(鄭地):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무장으로 활약하며 개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조온(趙溫): 개국 초반 조선의 내정을 정비하는 데 기여한 인물.
  • 조견(趙狷): 개국공신으로 나중에 추가 책록되었으며, 행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왕자의 난과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공신에서 제명되기도 했습니다.

3등 공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

조선 개국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지만 상대적으로 공이 적은 인물들이 3등 공신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총 22명이고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고여(高呂): 무장으로 활약하며 개국 전투에 기여하였다.
  • 조영무(趙英茂): 조선 건국 과정에서 군사적 지원을 담당한 인물.
  • 김균(金稛): 개국 후 행정과 정책 정비에 기여하였다.

이 외에도 이서, 장지화, 함부림 등이 있고 이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공신에서 배제된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개국공신 명단

등급 공신 명단
1등 공신 김시형, 배극렴, 이지란, 정도전, 조인옥,오몽을, 장사길, 정희계, 김인찬, 정안군, 이방원, 남은, 정총, 조준, 조박, 익안군, 이방의, 남재, 이제, 이화, 정탁, 회안군, 이방간
2등 공신 정지, 정용수, 박포, 장담, 조견, 조기, 조온, 조반, 유창, 윤호, 황희석, 조영규, 이민도
3등 공신 고여, 손흥종, 오사충, 이서, 장지화, 함부림, 김균, 심효생, 이근, 이직, 조영무, 황거정, 김로, 안경공, 이백유, 임언충, 한상경, 민여익, 유원정, 이부, 장사정, 한충

이 중 일부 공신들은 후에 공신 지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이름 사유
오몽을 1차 왕자의 난에서 숙청되어 공신에서 제명
회안군 이방간 태종 16년에 공신녹권 박탈
조박 정종의 아들 위조 혐의로 공신에서 제명
박포 제2차 왕자의 난 관련 죄로 1400년 공신에서 제명
장담 제2차 왕자의 난 관련 죄로 1422년 공신에서 제명

개국공신의 정치적 운명

조선 개국공신들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힘을 보탰으나 이후 정치적 격변 속에서 숙청되거나 추후 공신에서 제외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왕자의 난과 공신 숙청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정도전, 남은, 이제, 오몽을 등이 제거되었고 이들은 이후 공신에서 제명되었습니다.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박포, 장담 등의 공신들도 숙청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정용수, 이근, 심효생, 황거정 등은 후에 반란이나 정쟁에 연루되어 공신에서 제외되었으며 일부는 이후 복권되기도 했습니다.

개국공신에게 주어진 혜택

태조는 개국공신들에게 상당한 포상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공신의 지위를 세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작위 상승 : 공신들은 부모, 아내, 자식들의 작위가 상승되고 음직(世職, 세습 가능한 관직)이 주어졌습니다.
  • 토지와 노비 지급 : 1등 공신에게는 전지(田地) 200 결에서 300 결, 노비 20명에서 30명이 지급되었다. 2등과 3등 공신도 등급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 사면권 부여 : 공신의 자손들에게 일정한 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부여하는 등 특권이 제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종과 세종 대에 이르러 공신들에 대한 혜택이 일부 제한되고 공신의 영향력도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개국공신의 역사적 의미

조선 개국공신들은 조선의 정치, 경제, 군사적 기반을 마련한 핵심 인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개국 후 정치적 격변 속에서 상당수가 숙청되거나 공신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이후 세종 대에 이르러  공신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특권도 제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국공신들은 조선 초기 국가 운영의 중심이었고 이들의 활약은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정도전과 조준 등의 정책적 기여는 조선이 50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체제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개국공신의 이야기는 조선의 탄생과 함께 권력과 정치적 변동 속에서 역사 인물들이 어떻게 흥망성쇠를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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