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풍군 탄, 숙종 가계도 속의 밀풍군 비극적 운명에 휘말린 왕족
조선 왕실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과 억울한 누명 속에 사라진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 소현세자의 증손으로 태어나 한때 '대립 군주'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밀풍군 이탄의 삶과 숙종 가계도의 밀풍군의 위치까지 알아보겠습니다.
밀풍군 탄 소현세자 후손이라는 이름
밀풍군 이탄은 1698년 (숙종 24년),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 혈통으로 태어났습니다.
정확히는 소현세자 셋째 아들인 경안군 이 회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임창군 이혼입니다. 어머니는 함양 박 씨로 응천군부인으로 봉해졌습니다.
소현세자 가문의 후손이라는 배경은 조선 왕실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비극의 씨앗이기도 했습니다.
소현세자 후손들은 정치적 견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고, 밀풍군 이탄 역시 이러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밀풍군 이탄 가계도
관계 | 이름 | 생몰년도 | 주요 사실 |
본인 | 밀풍군 이탄 | 1698-1729 | 조선 후기 왕족, 이인좌의 난 연루 |
증조부 | 소현세자 | 1612-1645 | 인조의 장자 |
조부 | 경안군 이회 | 1644-1665 |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
부친 | 임창군 이혼 | 미상 | 경안군의 아들 |
모친 | 응천군부인 박씨 | 미상 | 함양 박씨 |
배우자 | 청풍 김씨, 임천 조씨 | 미상 | 정실과 계실 |
자녀 | 상원군 이진석 외 4남 4녀 | 미상 | 이인좌의 난 연루로 파양됨 |
숙종 가계도 밀풍군
구분 | 인물 | 관계 |
왕 | 숙종 (영조의 아버지) | 조선 제19대 왕 |
반란군이 추대한 인물 | 밀풍군 이탄 | 소현세자 증손, 숙종과는 왕실 친족 관계 (인조 후손으로 같은 뿌리) |
역사적 관계 | 숙종 → 경종 → 영조 | 밀풍군 이탄은 영조 대에서 반란에 연루되어 숙종 아들인 영조와 대립각 |
추가로 설명을 곁들이자면
- 밀풍군 이탄은 인조의 증손자, 즉 숙종과는 인조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왕실 친척 관계입니다.
- 직접적인 부자 관계는 아니지만 조선 왕실의 큰 가계도에서 보면 같은 혈통(전주 이 씨) 내의 친척입니다.
- 숙종의 아들이 경종과 연령군, 연잉군(후일 영조)이며, 숙종 사후 연잉군(영조)이 즉위한 상태에서 밀풍군 이탄이 이인좌의 난으로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 밀풍군은 소현세자 직계라 왕족의 적통성을 갖춘 인물이었고, 이러한 점 때문에 난의 명문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청나라 사행단 외교 경험
밀풍군 이탄은 두 차례나 걸친 청나라 사행 경험이 있습니다.
1723년(경종 3년)에는 사은사(謝恩使)로서 청나라를 다녀왔고, 1726년(영조 2년)에는 사은 겸 동지사(謝恩兼冬至使)로 다시 청나라에 파견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감각을 익혔지만 이런 경험이 밀풍군을 보호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는 빌미가 되었을 뿐입니다.
이인좌의 난과 대립 군주로 추대
1728년 (영조 4년)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반란 사건인 이인좌의 난이 발발했습니다.
남인과 소론 강경파 세력은 경종의 독살설을 제기하며 영조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이인좌와 반란 세력은 영조를 폐위시키고 새 왕을 옹립하려 했는데, 바로 그 인물이 밀풍군 이탄이었습니다.
밀풍군은 소현세자 후손이라는 왕족으로서 명분을 갖춘 인물로 반란 세력에게는 좋은 명분이자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반란군이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난은 단 10일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밀풍군 이탄은 반란의 정점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압송되었고, 결국 자결을 명 받아 생을 마감했습니다.
왕으로 추대된 기간은 고작 10일. 역사에서 그를 '조선의 비정통 군주'로 기록한 이유입니다.
왕족에서 역적으로, 그리고 150년 만의 복권
밀풍군 이탄의 최후는 참혹했습니다.
조선의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역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고 가문은 연좌제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습니다.
1864년 (고종 1년), 밀풍군 이탄은 마침내 복권되었습니다.
조선 말기에 들어 소현세자 후손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억울한 죽음이 다시 조명된 것입니다. 한때 왕으로 불렸지만 역사에서는 정통 군주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왕족에게 뒤늦게나마 명예가 회복된 셈입니다.
드라마 속 밀풍군
밀풍군 이탄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몇 차례 다뤄졌습니다.
2016년 방영된 드라마 <대박>과 2019년의 <해치>에서 밀풍군 이탄은 비극적 왕족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밀풍군의 삶은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온전히 권력을 손에 쥐지 못한 채 희생된 조선 왕실의 비운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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